Miyazaki Hayao and feminism
December 10th, 2004 by splash9very individual report about Miyazaki and feminism.
미야자키 하야오와 페미니즘
<권력의 전복을 꿈꾸는 것은 계급뿐만은 아니다>
페미니즘[feminism]은 19세기 중반에 시작된 여성 참정권 운동에서 비롯되어 그것을 설명하는 이론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페미니즘의 시초는 자유주의에 근원을 두고 있는데, 자유주의적 페미니즘에 의하면 여성의 사회진출과 성공을 가로막는 관습적, 법적 제한이 여성의 남성에 대한 종속의 원인이다. 따라서 여성에게도 남성과 동등한 교육기회와 시민권이 주어진다면 여성의 종속은 사라진다고 한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자유주의적 페미니즘을 비판하면서 사적 소유가 존재하는 한 참된 기회균등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한다. F.엥겔스는 여성억압이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로부터 시작되었으며 자본주의가 바로 여성억압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급진적 페미니즘은 가부장제에 기초한 법적 ·정치적 구조와 사회 ·문화적 제도가 여성억압을 가능하게 하는 것 외에 생물학적인 성(性)이 여성의 정체감과 억압의 주된 원인이며, 여성해방은 출산 ·양육 등의 여성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변혁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주의적 페미니즘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이 성별 특성을 간과했다고 지적하고, 여성억압은 노동자 억압과 마찬가지로 중요하며 따라서 자본주의와 가부장제를 한 가지 개념을 사용하여 분석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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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와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페미니즘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했다. 요즘들어서 자주 접하게 되는 말이지만, 막상 그 뜻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흔히 페미니즘은 여성도 남성과 같은 위치에 있으며 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다라는 것을 주장하는 주의로 알려져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종종 그 의미가 곡해되어 사용되어지기도 한다. 과격한 여성운동에 가까운 이미지도 내포하고 있고 강한 여성상을 제시하여 그것이 또 다른 틀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페미니즘은 위에 언급된 대로 자유주의에 기본을 두고 있으며 사회주의적 개념에서는 계급간의 투쟁과 같은 위치에서 이야기 된다. 나는 이점에 이번 리포트의 포인트를 두고 싶다. 그 이유는 내가 알고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는 페미니즘적 작가라기보다는 아나키즘 (anarchism) 혹은 반파시즘 (反fascism) 적인 성향이 강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강한 초월적 국가에 대항하는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한 그이기에 그런 부분에서 페미니즘과의 공통 분모를 발견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해 길게 그의 프로필을 열거 하지 않더라도 그의 자국인 일본에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그의 위치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대감독이다. 일본내에서는 발표되는 극장판 애니메이션 마다 상당수의 관객을 동원하며, 또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해 곱지만은 않은 인식을 가진 우리나라에서도 연령대를 초월하여 감상할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내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다. (데츠카 오사무, 오시이 마모루등을 잘 알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보편적 관객에게 있어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선정성, 폭력성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이기도 하다.)
그런 그의 작품에 거의 일관적으로 흐르고 있는 몇가지 코드가 있다. 그것은 자연, 하늘, 해방, 자유, 그리고 여성이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風の谷のナウシカ)’를 비롯하여 ‘천공의 성 라퓨타 (天空の城ラピュタ)’, 그리고 최근작인 ‘원령공주(もののけ姬)’,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千と千尋の神隱し)’에 이르기 까지 그의 자전적 성격이 짙은 ‘붉은 돼지(紅の豚)를 제외한 거의 모든 작품에서 주인공의 성별이 여성이라는 점만 봐도 그의 작품에서 여성이라는 존재가 차지하는 비중을 알 수 있다. 이야기 구조를 풀기에 용이하기 때문에 혹은 그리기 편해서, 보면 이뻐서등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있지만 그런 속내 깊은 실제이유들을 차치하고서라도 등장 빈도만으로도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은 많이 있다. 나의 관심사는 실제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페미니즘적 사고를 하고서 작업을 했는지, 그리고 페미니즘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는지가 아니다. 왜 그의 작품을 보면서 사람들은 페미니즘적인 뉘앙스를 느꼈으며 또 그것을 발견하려 하는가이다. 위에 열거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 속 키워드들이 그 해답의 일부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여성해방’ 혹은 ‘여권신장’등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라 자연, 하늘, 자유 이런것들을 이야기하면서 그 화자로 여성을 택했다. 이것은 같은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본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거의 일관되게 그의 작품에서 ‘사회전복’의 이야기를 표현해왔고, 계급구조 혹은 자본적 구조에 의해 소위 ‘악한’이 된 악당들을 무지하고 선하게 표현함에 대비해 실질적 질서 유지 체제인 국가권력을 ‘실제 악인’ 으로 묘사해왔다. 이것은 서두에 밝힌 그의 무정부주의적 성향과 깊은 연관이 있다. 그는 그의 그러한 사상에 대한 해답을 ‘자연’으로 생각한듯 하다. 과학 혹은 산업은 자본으로 연결되고 자본은 거대 권력을 형성하며 이러한 거대 권력은 파시즘적으로 힘을 행사한다. 이러한 것을 모두 제거하고 ‘약자’인 개인이 돌아갈 곳으로 그가 선택한것이 ‘자연’인 것이다. 이러한 자연의 특징중 하나가 바로 ‘생산-잉태’이다. 바로, ‘어머니’인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나열해 놓고 보면 왜 그의 작품에 여성이 주인공이 되었는지 어느정도 추론이 가능해진다.
첫째로는 원점으로 돌아가야할 우리의 고향 ‘자연’의 이미지를 품은 ‘어머니’의 대체 이미지로서의 여성이 존재한다. 남성에 의해서 그들의 편의에 의해 해석되어온 여성의 이미지를 가급적 배제하고 인간 자신의 고향으로서 힘을 가지고 있는 여성에 대한 이미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둘째로, 거대권력에 대항하는 자유세력에 대한 기본 객체로서의 여성이다. 자본을 중심으로한 국가 그리고 거기에 대항하는 노동계급. 이것이 일반적인 대항구조라면 이것은 고스란히 여성에게도 적용되는 것으로, 사회 대부분의 힘을 쥐고 있는 남성이라는 ‘권력’에 대항하고 있는 여성이 바로 그것이다. 권력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그 힘은 여러가지에서 오지만 여성에게 있어서 권력은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사회구조적 우위와 자본, 그리고 신체적인 힘의 우위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서 여성의 이런부분들은 상당부분 보완되거나 혹은 그것에 구애받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데, 지도력과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한 종족의 초월적 지도자 (원령공주) 등에서 그러한 부분을 쉽게 파악할 수있다. 거대한 힘을 가진 적 – 남성에 대항해 동등한 입장에서 투쟁하고 결과적으로는 자유를 얻어내는 모습을 묘사함으로서 자신의 무정부주의적 이야기에 더욱 힘을 싣게 되는 것이다. 무엇이 우선인지는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계급투쟁의 성공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함이지 여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나 그들의 자유 자체를 이야기 위함은 아니라는 것이 내 의견인 것이다.
일례로 그의 작품속 여성은 외양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그 독립적인 힘과 동등한 위치에도 불구하고 순수히 남성의 입장에서 바라는 여성상도 같이 내포하고 있다. 오직 남자주인공 한명만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태도(미래소년 코난, 천공의 성 라퓨타)라던지, 갸냘프고 보호본능을 유발시키는 외양적 묘사등이 바로 그런 부분이다. 그의 무정부주의적 사고의 표현 방법중 하나이던지, 아니면 진정한 근본으로의 회귀이던지 그런것과는 상관없이 사람들은 그의 작품에서 페니미즘적 성향을 읽을 수 있다. 이것은 서로 상반된 대치 개념속에서도 그의 작품속 여성 캐릭터가 가지는 기본적인 자유추구에서 찾아볼수 있다. 페미니즘의 기본이 자유주의에서 온점을 감안한다면 이것은 일견 당연한 일일수도 있다. 헐리우드의 마초적 남성우월주의에 찌들은 우리들에게 어쩌면 이것은 다른 ‘진정한 페미니즘’ 영화보다 많은 이야기거리를 줄 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 가진 자유에 대한 갈망과 자연의 이미지가 녹아든 아름다운 ‘판타지’이기에 가능한 것일 것이다.
written by splash9.